
2004년이었다. 당시, 지하철로 등교를 하던 나는, 등교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땐 학교가 가까워서 통학하는데 1시간 정도밖에 안 걸렸지만 아까운건 아까운 거였다.
이 시간에 무언가를 해야겠다. 고 생각했는데 마땅히 할 만한게 없었다. 앉아서 공부하는건 절대로 불가능했다. 왜냐면, 당시 내가
이용하던 지하철 라인이..2호선 신림->강남 라인이었다. 게다가 그땐 1교시가 많았다. 출근시간대의 2호선 그부분은 어마어마하게 만원이다. 타보면 '지하철이 적자라는건 개소리다. 적어도 2호
선은.' 라는 소리밖에 안 나온다.(나는 지금도 지하철이 적자라는건 안 믿는다.)
모바일 게임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왠지 시간을 허비하는것 같아서..궁리하던 도중. '모바일 인터넷에 책 다운 받아서 볼 수 있는 서비스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엔 휴대폰용
텍스트 뷰어가 있던것도 아니었다.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에 접속해보니, e북 서비스가 있긴 있었다. 들어가서 무슨 책이 있나...찾아보고 있었다. 통화료때문에 대강대강 넘겨가며 제목들을 읽어보는데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 눈에 들어왔다. 어, 이거 알아. 최연소 무슨 문학상 받았다는 그거? 그리고 다운로드 받았다.
당시 일본 문학에 그다지 흥미가 있던것도 아니었고, 작가에 대해 별로 아는것도 없었지만. 그 서비스에는 아는 제목의 책 자체가 거의 없었다. 거기에, 통화료는 계속 부과되고...해서 빨리 받았
던 것이다.
그 작품이 처음으로 와타야 리사라는 작가를 알게 해 주었고, 결국 책까지 구입하게 되었다.
(옆에 빛때문에 제대로 안 찍힌 책은 같은 작가의 책 인스톨)
시니컬 소녀와 오타쿠 소년의 이야기
주인공인 소녀는 친구도 별로 없고, 세상에 대해 온통 시니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본인과 비슷?) '혼자가 싫으니까.' 라는 이유로 친구를 만들어가는 같은 반 아이들도 한심해 보이고, 학교 자체에 흥미도 없다. 그저 그렇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날 수업 시간에 존재감 없는 소년이 보던 잡지를 바라본다.책에는 한 여성이 모델로 나온 광고가 펼쳐져 있었다.
'아, 나 그 여자 알아.' 원래 낮선 사람들이라도 자기가 아는 주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면 끼어들고 싶어지는 법. 주인공도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낀건지 그에게 말을 붙인다. '아, 그래?' 식의 반응이 돌아오는게 보통이지만, 의외로 상대 남자는 엄청 흥분하며 이것저것 물어오기 시작했다.
소년은 모델 여성의 엄청난 팬이었던 것이다. 왠지 팬이라기보단 오타쿠같은 느낌의 소년과 소녀는 그렇게 만난다.
스토리는 그다지 특별한것 없고, 오히려 '소년, 소녀를 만나다' 식의 평범한 스타트이다. 애초에 이 작품은 스토리보다도 다른 면을 주목할 게 많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주인공의 행동. 사회에 대해 시니컬하면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하며 행동하는 그녀에게 많은 공감이 갔고, 감동도 받았다. '맞아. 나도 이렇게 생각해' 할 때도 있었고, 생각없이 살아가는 듯한 주인공들에 질렸던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아무래도 작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서인지, 학생 특유의 '세상에 대한 불만'은 있는데, 문체나 설명은 문학상을 받았을 만큼 차분하고 설득력이 있다. 작가의 역량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작품은 어떨까?
와타야 리사씨의 다른 작품으로는, 데뷔작인 인스톨과 최근에 나온 꿈을 주다가 있다.
인스톨은 이 작품과 너무나도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세상이 귀찮기만한 여 주인공. 남자애 한 명. 당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등교 거부' 를 하게 되면서 내용이 전개되는데..분량은 미칠듯이 적긴 하지만 재미는 이것만큼 있다. (사실 발로 차주고...도 분량은 적다. 그 두께를 커버하기 위해 둘 다 양장본으로 출판하였지만..아무리 봐도 두껍게 보이려고 만든 상술이다.(막상 책값은 다른 책들과 별반 차이도 없다.)인스톨은 처음에 일반판으로 출시가 되었는데. 그 두께란 정말..)
최근에 인스톨이 또 다시 개정판이 나왔다. 이걸로 3번째 판이다 3번째. 대단한 돈독이다..라고 말하고 싶어도. 셋 다 출판사가 다르다. 출판사가 망했나..
그런데, 이번의 개정판은 무려 +알파로 단편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이로서 안 살수가 없다. .....
최근작인 꿈을 주다. 는 개인적으로 많이 실망한 작품이다. '꿈을 주다'는 내가 군대 말년때 나왔고, 전역하자마자 샀다. 일단 문제가 되었던(?)두께는 매우 두꺼워졌다. 대신에 내용은..재미도 없고 감동도 그다지다. 이상하게 묘사만 많이 늘어났고, 설명적인 내용만 많다. 게다가 본질적으로 재미가 없다.
와타야 리사씨가 와세다 국문과에 갔다고 하는데. 정말, 국문과다운 문장이 되어버렸다고 해야하나. 틀에 박힌 문장이 되었다. 그녀 특유의 살아있는 생생한 문장은 어디가고. 마치, 신춘문예 응모작 같은 이런 죽은 문장은 나를 완벽하게 실망시켰다.
스토리는..반짝 떠오른 아이돌스타가 현실에 마구마구 부딪치는 내용인데. 아무래도 작가의 경험이 많이 반영된 듯 하다. 와타야 리사는 '미소녀 작가' '최연소 아쿠타가와상' '와세다 여대생!' '단일 작품으로 200만부 돌파'등으로 엄청난 스포트라잇(맞나?)을 받은 작가이다. 당연히 매스컴도 마구마구 몰렸을테고, 속편에 대한 기대도도 높았을 것이다. 엄청난 부담이 되었으리라..
그래서인지 한동안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나 역시 기회가 될 때마다 '와타야 리사' 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으나 결과는 항상 동일.
그러다 몇 년만에 신작이 나왔던 것. 아무래도 자신의 경험. 즉, 매스컴의 집요한 취재. 사람들의 지나친 기대등의 스트레스를 풀어낸 듯 싶다.
여기에 재미까지 있었다면 매스컴에게 스트레이트를 먹일 수 있었겠지만 미안. 재미가 없으면 어떡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작가는 매스컴에게 날개를 꺾인 거다.
차라리 내용을 과감하게 줄이고 스트레이트하게 빠른 전개로 나갔으면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개도 너무 늦고. 읽다가 '스토리가 기대되서 남아있는 페이지가 줄어가는게 아까운' 전개가 아닌, '빨리 다 읽어버리고 덮고 싶은' 뻔한 전개이니 문제가 있다. 심지어 주인공에게 공감가는것도 별로 없다. 결말도 밋밋하다.(이건 다른 두 작품도 그렇긴 하다)
물론 다음 작품이 나오면 일단 사고 보겠지만. 제발 전만큼 돌아갔으면 한다. 일단 '신춘문예 응모작' 같은 대학냄새나는 문체부터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미 대학도 졸업 했다.)
다음 작품 : 영화 - 신데렐라 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