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링은 사촌 형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형은 당시 공포라는 장르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어느날 내게 '링 바이러스' 라는 책이 있다며 이야기를 하는데, 공포 특급 이런건 비교도 안 될정도로 무서운 소설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 무시무시한 저주받을 책이 있단 말인가!

사실 당시에 '공포 특급' 이라는 책을 시작으로 서점에서도, 방송에서도, PC통신에서도 공포 이야기가 굉장히 뜨겁던 시절이었다. 나 역시 어느정도 관심이 있어서 PC통신에서 아마추어 공포 소설을 다운 받기도 했고(그중에서 소설 한 권 분량의 걸출한 명작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도 기억이 안나고 하드도 날라가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어줍잖게 단편 공포 글을 써보기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나게 무섭다는 링 바이러스 라는 이야기에도 굉장히 관심이 생겼지만, 당시 나는 용돈도 적었고 무엇보다 '책을 내 돈으로 구입한다' 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환상만 키우고 있었는데..
마침 다니던 학교에 교실 한 칸 크기의 도서관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나는 그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단골 중 하나였다. 점심 시간마다 개방했는데 매일 거기서 살았으니까….

그 도서관에는 물론 만화는 없었지만(만화 삼국지는 있었다.) 판타지 소설이 그럭저럭 있어서 제법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그 도서관에 '링' 도 있던 것이다! 그것도 1~3권 모두. 나는 하악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으나 이 책이 제법 알려지긴 했었는지 비교적 이용인이 적은 도서관에서도 제법 인기가 있었다. 1권이 이미 대출중이라서 2권을 먼저 보게 되었고, 그때까지 반납이 되지 않아 3권을 먼저 빌리고. 마지막에야 1권을 볼 수 있었다. 참 엉망으로 봤다. 지금이었다면 그냥 반납되길 기다렸다가 봤을 텐데….
아무튼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 생각해보면 최초로 읽었던 일본 소설이 아닌가 싶은데…굉장히 몰두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나는 이 책을 중고로 전권 구입하게 되었지만.
별 이유도 없이 한 번도 읽지 않고, 다시 매각했다. (그땐 충동적으로 샀다가 되파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고 몇 년 후. 황금가지에서 양장판으로 재발간한 덕분에 다시 소장하게 되었다.

소장만 했지, 계속 읽지는 않고 놔두다가. 최근에 거의 10년만에 다시 읽었는데.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그땐 어렸을때라 내용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넘어갔던 부분까지 이해가 되는데..확실히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당시에는 링 1권을 제일 재미 없게 읽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링 2,3권을 이미 읽은 터라 결말도 대충 짐작이 갔고. 무엇보다 형식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링은 1,2,3편의 이야기가 모두 직접적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장르조차 다르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미 2,3권을 읽은 나로서는 1권의 형식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졌다.
또한 링2가 인상에 깊었던 나로서는 류지라는 주연 캐릭터에 정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내용이 가물가물해진 지금에 와서. 다시 1권부터 읽어보니 또 색다르다.
링 1편이야말로 정말 획기적인 명작이었던 것이다. 특히 스토리 윤곽이 완벽에 가깝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우 선 의문의 사건을 추적해가는 과정과 비디오 테이프 입수 경위가 굉장히 매끄럽다. 사실, 경찰도. 탐정도 아닌 사람이 살인 사건에 개입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게다가 난데없이 비디오 테이프를 보게 되는 경위나, 비디오 테이프의 내용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이유까지 거의 완벽하다.

류지와 합류하고 나서는 더욱 그렇다. 마치 미스테리 소설을 보는 듯한 '실마리를 따라 가는 과정' 이 굉장히 뛰어난 것이다. A를 찾은 후에 B를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C를 따라 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우면서도 흥미진진하다. 미야베 미유키씨의 미스테리를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로 바로 이 '흥미진진한 추적 과정' 을 꼽는 나로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의 반전까지 훌륭하다. 아무튼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대단한 명작이다.



사랑 노래 말고 내게 빠져봐

링이 훌륭한 이유 하나를 더 들자면 그 흔한 사랑 이야기 하나 없다는 것이다. 사랑 이야기는 커녕, 여성 캐릭터의 출현 빈도 자체가 거의 없다.
이게 뭐가 훌륭하냐면, 인기를 위해 어거지로 사랑 이야기를 끼워 넣는 B급 작품들이 (특히 만화에 많다.) 산더미같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인기 보다는 이야기 자체의 퀄리티에만 신경썼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작품이 드라마, 영화화 되면서 일부 작품에는 주연 인물이 여성으로 바뀌는 엉뚱한 일들이 일어났는데.
어떻게든 로맨스를 집어 넣어 여성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려는 전형적인 술수이다. 아아. PD여. 감독이여. 얼마나 돈이 탐나면 훌륭한 시나리오를 속물로 만든단 말인가. 아무튼 답이 없는 시장이다.
역시 이런 건 한 사람이 주도를 하고 만들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모일수록 이해 관계는 돈밖에 남지 않거든..



호러 소설 링?

이 작품은 호러 소설로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미스테리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물론 링 바이러스라는 특유의 아이디어로 오싹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나, '공포를 주기 위한 효과' 도 그다지 찾을 수 없고(애초에 비디오 내용 자체는 무서울 것이 없다.), 너무 판타지성이 강해서 '공포'를 느끼기엔 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기시 유스케씨의 '검은 집' 같은 쪽이 특유의 현실성과 겹쳐서 공포에 가깝지 않나…하고 생각한다.
사실 이 작품이 호러로 유명해진 것이 바로 영화 '링' 때문인데. 나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한국판이든 일본판이든 미국판이든)
그렇지만 컨셉만 봐도 영화는 억지로 호러 영화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한다. 1권에선 흔적밖에 찾을 수 없는 야마무라 사다코를, 난데없이 TV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로 등장시켜버렸으니..
이 효과는 어마어마해서 실제로 '링 = 사다코 튀어나오는 영화' 라는 이미지까지 확립시키고 '호러 영화' 로 불리는 1등 공신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원작에서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던 만큼, 이런 '억지 호러화' 에는 달가울 리 없다. 아마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혹시 영화를 보고 실망해서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꼭 원작을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링 2부터는 part 2에서...


http://ttkti.ivyr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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