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대안의 그녀'의 가쿠다 미쓰요씨의 작품이다. 대안의 그녀때문에 이 작가의 몇몇 작품도 보게 되었는데 이 작품 또한 매우 인상 깊다.

이 작품은 신문에 실렸던 실제 일어난 범죄를 바탕으로 작성된 픽션이 다. (르포가 아니다. 실제 사건에서 '틀' 만 가져왔을뿐 등장 인물의 성격, 범죄에 이르는 과정, 가해자의 죄책감 등은 완벽하게 허구이다.) 이 설정에 매료되어 이 책을 구입하였는데. '대안의 그녀'나 이 작가의 다른 작품 '8일째 매미'(이것도 언젠가는 다룰 것) 등을 보면 미스테리와는 전혀 인연이 없어 보이는 이 작가가 범죄 관련 글을 작성하면 어떤 느낌일지 굉장히 궁금했다.
그리고 읽고서야 깨달았다. 이 작품은 범죄 소설이 아니다. 사건을 바탕으로 그 주변 인물들의 상황을 다룬 '드라마' 인 것이다.

이 작품은 여섯 개의 단편로 이루어져 있다. 각 이야기는 모태가 되는 사건이 있는데, 그렇다고 '연쇄 살인' 이나, '억대 사기' 같이 커다란 사건을 다루는 게 아니라, 한 달에도 1~2번 정도는 신문에서 볼 수 있는 '비교적 비중이 낮은 단순한 사건이긴 하나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틀림없이 신문에 실리게 될만한' 사건들이다. 작가는 처음에 먼저 배경이 되는 기사의 일부를 책에 싣고 나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즉, 이야기의 결말을 미리 알게 된 상태에서 시작을 하게 되는 것인데, 그런 만큼 미스테리에서 볼 수 있는 긴장감은 전혀 없고,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까?' 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효과가 있다.

이야기를 보면 알지만, 범죄자에게도 모두 사연이 있고, 그것은 굉장히 가슴 아픈 일인 것...이 라는게 주요 테마다. 물론 반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유영철, 강호순의 경우 사연같은걸 따져줄 가치가 있는가?' 물론 그렇다. 그러니 말했듯이 그런 사건은 애초에 다루질 않으니 안심하라. 살인 자체가 거의 없다. 그리고 이것은 픽션이다. 모든 범죄가 다 그만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는 신문에 실린 기사를 그대로 받아들여 신문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이 실제 범인이 아닐 경우에도 침 튀기며 욕설을 퍼붓고, 블로그에 스크랩을 해간다. 존속 살해 같은 경우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지 모름에도 사건만 바라보고 피의자를 무조건 욕하는 것이 현실이다.

가장 확실하게 공감한 것이 마지막 '빛의 강'이다. 이 이야기는 치매 노모를 유기한 한 남자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복지가 엉망인 일본 사회와 뒤얽혀서(물론 한국은 더 하면 더 했지 좋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받는 고통을 담담하면서도 인상깊게 다루고 있다. 저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택하겠는가. 감히 누가 가해자에게 돌을 던진단 말인가. 만약 한국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하였을때 전후사정 다 빼고 사건 자체만 기사화 되었다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피의자를 향해 얼마나 욕설이 난무하겠는가. 하지만 그건 본인이 그 상황과 무관할것이라 생각해서 하는 행동일 뿐. 실제 이런 소설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는가?
빛의 강 외에 다른 이야기들도 대부분 '주변의 암담한 현실' 과 '착하지만 않은 주변 인간들'에 의해 여러가지 방황을 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대안의 그녀' 초반과 후반부에서도 그랬고. '8일째 매미' 전반부분에서도 이 작가는 항상 책을 덮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암울한 이야기를 잘 쓰는 것 같다. 이번 작품은 그것이 폭발하는 느낌인데, 우울하면서도 굉장히 현실적이고 공감의 요소가 있어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문제점.

다만 문제로 지적하고 싶은게.. 해당 사건들은 일본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사건을 야후 뉴스에서 검색해서 찾을 수 있을 정도의 능력도 없고, 이 작품은 위키페디아에 등록되어 있지도 않아서 정보를 얻기도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 작품은 99% 픽션이고(이것은 책 머릿말에도 강조되어 있다.)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 정식 취재가 이루어지지도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가 문제삼고 싶은 건 어디까지가 현실인지...라는 부분이다. 사소한 것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누가 범인인지, 왜 그랬는지? 같은 경우를 100% 창작했다가는 범죄 두둔이 되어버릴 수도 있고, 무엇보다 억울한 사람을 모함하는 경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픽션이라고 밝혔다 할지라도 실제 신문 기사를 함께 실어버렸으니 묘하게 현실감이 있다. 너무 심하게 바꿀 경우 명예 훼손의 여지가 있지 않는가.
특 히 '영원의 화원' 같은 경우 당췌 알 수 없는 동기를 작가 나름대로 창작했는데(실제 사건이 이랬을수도 있으나, 삼면 기사만을 가지고 작성했다면 완전히 창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는 교권이 붕괴되어 버린 일본의 학교에서 철없는 어린애들이 이유도, 생각도 없이 '재미 삼아' 했을지도 모를 범죄를 안타까운 사연으로 바꿔버린 경우일지도 모르고(아울러 피해자인 선생님만 나쁜 사람이 되고), '빨간 필통'의 경우 실제 범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해결 사건이라면 애꿎은 피해자의 언니만 범인으로 몰린 셈이다. 물론 그런 중요한 것은 실제 사건 그대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으나, 만약 그게 아니라면 상당한 인권 침해 및 명예 훼손이고 설령 픽션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법으로는 문제 없다 할지라도 도덕적으로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해자만 두둔하고 피해자의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작품이 될 테니까. 그러니, 차라리 동기 및 가해자는 모두 사실이기를 바란다.

이 문제만 없다면 정말 굉장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처절한 인간 사회를 이만큼 잘 다루는 작가가 어디있겠는가. 역시 이 작가는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대안의 그녀를 알게 된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덧 붙여 이 작품을 보기 전에 '만약 미야베 미유키 여사가 이런 식으로, 실제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어떤 미스테리가 될까?' 하고 생각했었다. 아마 현실적이면서 냉혹한 범죄 드라마가 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도 보고 싶기는 하나..이런 이야기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미스테리도 좋지만 이런 드라마도 필요하다. 너무 내용이 적나라하고, 또 우울해서 1류 작가로 불릴 수는 없겠지만, 서글프고 냉정한 민주주의의 현실을 돌아보며 이런 이야기도 한 번쯤 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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