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주인공 혼마는 부상으로 휴직중인 형사이다. 어느날 그에게 아내의 조카가 찾아온다. 별로 친하지도 않고, 아내의 장례식조차 오지 않았던 그가 찾아온 이유는,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린 약혼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약혼자인 조카에게 개인 파산 사실이 들킨 이유로 종적을 감춘 것으로 추정. 납치나 실종이 아닌 스스로 사라진 것이었다.
할 일도 없고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를 찾아다닌 그는, 조사를 하면 할수록 상상도 못할만큼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되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지금까지의 리뷰와는 다르게 스토리를 먼저 써봤는데, 그 만큼 이 책의 스토리는 중요하다. 보는 내내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컴퓨터 중독 증상이 있는 내가(-_-;) 컴퓨터도 끄고 책에만 몰두할만큼 훌륭한 스토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모방범으로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책을 접하게 되었고, 대단한 충격을 받고 이후에 이유, 화차 등 여러권의 책을 샀다. 마침 인터파크 포인트, G마켓 특가 판매 도서 ,11번가 50% 쿠폰등등 기회가 많았기도 해서 단기간내에 꽤 많은 책을 사게 되었다.
아무래도 많은 책을 발표한 작가이고 오랜 기간동안 다장르로 활동하는 지라, 책마다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이유'같은 경우는 대단히 재미있게 읽었지만, '혼조 후카가와' 같은 경우는 평작이란 느낌이었다. '브레이브 스토리'의 경우 ...왠 오쿠다 히데오씨같은 이야기를...
그 중에서 이 책은 현대물이고, 카드빚/신용불량자에 대한 이야기라 해서 모방범과 비슷한 범죄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 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완벽하게 돌아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모방범보다 높게 친다. 미야베 여사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비교적 신인 시절에 쓴 책이지만 그 완성도라던가 전개의 능력은 베테랑 작가 이상이다.


100% 현실적인 스토리

미야베 여사는 작가를 하기 전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사건을 다룬 작품들은 리얼리티가 굉장히 높은 편이고, 작품 내에서 변호사 사무소가 등장하기라도 하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선 쓸 수 없는 자세한 묘사'를 해놓고 있다. 일반 회사와는 달리 변호사 사무소는 일반 사람들에겐 인연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제대로 그려내기 힘들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녀의 전 경력은 크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한, 사건 자체나 범행 동기도 그렇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에, 비슷한 선례가 있던 범행 동기. 그리고 배경이 되는 공간. 논픽션 작품이라고 소개한다면 그대로 믿을 것만 같은 내용이다.
이 작품 뿐 아니라, '이유'와 '모방범'등에서도 볼 수 있는 리얼리티높은 사건들과 피해자의 심정같은 것을 보면 '전 변호사 사무소 직원이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내용' 이라는 점에 감동받게 될 것이다.


빚. 그리고 신용불량.

나는 책을 볼때, 영화를 볼때 스토리를 어느 정도 이상으로 아는 것을 싫어한다. 아주 기본적인 개요만 알기를 원한다. 그래서 막상 작품을 보니 생각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일때도 있었고, 후회한적도 많았다.
이 화차역시 내가 알고 있었던건 '카드 빚에 관한 이야기' '신용불량자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야기' 정도일 뿐이었다. 어차피 작가 이름을 보고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정보도 필요없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의 심오하기까지 한 복선과 반전을 보고 있으면, '모르고 읽어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최대한 중요 내용 설명을 피하겠다.
알려진대로 이 책은 카드 빚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주인공이 카드 빚에 지게 되는 과정. 과소비라던가 내 집 마련이라던가 하는 동기가 나오고 빚에 쪼들리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무너지는 식으로 전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 모든 것이 종료된 시점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의 친척의 약혼녀가 '과거에 빚을 졌었고, 그 사실이 약혼자에게 알려진 후 사라지는' 것이 출발 지점인 것이다.
다 끝난 상태로 시작하는데도 페이지가 이렇게 많아? 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생각했다.
아하. 그 여자를 찾느라 절반. 나머지는 그 여자의 과거 이야기. 이렇게 전개 하겠구나. (셜록홈즈 장편이 대체로 이런 구성) 하지만 내용을 읽어가며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혀 다른 전개였던 것이다.


50원에 목숨을 팔 거야?

신용 문제 말고 개인정보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간접적으로 나타나있다.

우리는 인터넷을 하면서 개인정보를 팔라는 수 많은 유혹을 받게 된다. 설문조사에 응하면 포인트를 준다거나, 추첨을 통해 경품을 준다거나. 하는 이벤트의 상당수에는 '이 데이터는 1년간 OO에 사용되고..' 라는 글귀가 붙어있다. 대놓고 보험사에 넘기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그런거 옛날에 다 넘어갔다. 그냥 전화 걸려오면 받고 끊어버리면 되지.' 라고 위험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 많다. 내가 이벤트 정보 사이트 들낙거려보면 그런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전화 목적으로만 사용된다고 적혀있는 경우가 많으나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화차를 보면 고작 몇백포인트를 얻기 위해 개인 정보를 판다는건 너무나도 위험한 짓이라는것을 알 수있다.

이 화차가 발행되었을때는 90년대 초반으로, 인터넷은 커녕 PC통신도 활성화되지 않았을때였다. 그럼에도 회사 내 개인 정보 사용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물론 그것까지 의도하고 집필한것은 아닌듯 하지만) 나는 이제 왠만한 사이트는 회원 가입도 거짓으로 할 것이다. (대체 쇼핑몰도 아닌데 주소/전화번호 입력을 왜 해야 하는 걸까?)
내가 아무리 여기서 침 튀기며 외쳐봤자 수 많은 사람들은 수백 포인트에, 이벤트 응모에 개인 정보 팔아 넘기고 '이미 팔릴만큼 팔렸으니 전화 몇 통 무시하면 끝' 할 테지만. 적어도 이 사이트 방문객들중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개인정보 하나에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이 책의 피해자는 그런 싸구려 같은 설문 조사에 응한 것도 아니었음에도. 어이 없는 방법으로 개인 정보가 유출되어 결국에는 그것때문에 살해당하게 된다.

심지어 인터넷에 보면 고작 포인트 50원에 신나게 개인 정보 팔아재끼는 우민들도 있다. 고작 전화 몇 통 받으면 끝. 이라고 세상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놓고 나중에 피싱 전화라도 받으면 조선족이 어쩌니 하고 욕을 하고, 쇼핑몰에서 개인 정보 유출되었다는 말을 하면 피해 보상 하라고, 고소 할거라고 소리친다. (예전에 그런 사건이 있었을때 일부 우민들은 '난 변호사니 고소하고 싶으면 주소와 전화번호를 보내고 돈을 입금하라, 이기면 몇 배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허접한 사기에 속아 개인정보와 현금을 넙죽 넘기는 일도 있었다.)

당신 목숨의 가치는 고작 50원입니까?

뭐, 나중에 큰 일을 당해봐야 그제서야 정신 차리겠지.

나는 아닐거라고? 그것이 제일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악마가 있다.


위 제목은 본인의 소설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의 1주차 부제목 이름이다. 하지만, 이 이름이야말로 이 '화차'에 잘 어울린다.
혼마 형사의 개인적인 수사(휴직중이므로)가 계속되면서 경악할 만한 사실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어느덧 '악마' 가 눈 앞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평범한 인물이 자신을 위해서라면 악마가 될 수 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나 '남의 일'에서 다뤄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미야베 여사는 훨씬 더 현실적아고 흡입력 있게 펼쳐놓고 있다.
악마는 누구인가?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악마를 낳은건 이 세계인가? 이 세계의 무엇이 잘못인가?

작품의 배경이 일본이지만 현대 한국과 너무나도 많이 닮아서 더욱 무섭다.(우리나라 법이란게 일본 + 미국 법을 그대로 배껴오는 것이므로. 실제, 작품의 배경으로부터 5~10년 후에 우리나라에도 신용 불량/사채 문제가 크게 떠오르게 되었고) 이 이야기는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 세계'를 그리고 있다. 사채를 쓰게 되는 이유. 가족이라도 원칙적으로는 채무를 떠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는 그런 '법'.(이건 우리나라도 똑같다.) 그리고 그 이후의 나락. 신용 카드를 만들게 되는 이 시대의 젊은 사람들은 꼭 이 작품을 읽었으면 한다. 빚이라는게 절대 남의 일이 아님을, 무계획으로 마구 낭비하는 한심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실 내가 다음에 쓸 이야기도 이런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주 주제는 아니긴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대충 다뤄선 절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말하고 싶은 것은. 악마는 악마일 뿐 동정의 가치는 없다. 결국 간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채업자보다 직접적으로 살해를 한 악마가 훨씬 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뭐? 그럴만한 사정이 있지 않냐고? 그런거야 유영철도, 강호순도 있었겠지. 세상에 이유 없는 무덤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며

마무리가 좀 아쉽긴 하나(좀 많이 아쉽다. 중간에서 끝난듯한 느낌. 또한, 범인을 동정하는 듯한 애매한 표현이 있어서 거슬리기도 하다.) 그것만 빼면 뭐 하나 흠잡을것 없이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다.

미니 드라마로 만들기엔 너무 수위가 높고, 영화화 하면 딱 좋을 스토리이긴 한데,(2시간만으로 100% 표현할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미야베 여사가 영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니 어려울지도 모른다. (모방범 영화 버전이 하도 개판이라서 그렇다는 말도 있다)


아무튼.

모두들 빚 조심.
그리고 개인정보 유출 조심하시길.



다음 작품 : 소설 - 셜록 홈즈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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