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불꽃은 '검은 집'의 기시 유스케씨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본판 죄와 벌이라고 홍보가 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살인과 그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토리 전개는 별로….
초반 스토리
주인공은 아버지가 안 계시지만, 상냥한 어머니와 귀여운 여동생과 같이 살고 있는 복 받은 고등학교 2학년 소년.
어느날 어머니의 전 남편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집안에 눌러 앉는다. 그 남자가 가족에게 행하는 난폭하고 불편한 행동을 참다 못한 주인공은 이전의 행복을 되찾고자 그를 죽이려고 하는데...
작품을 읽어보면 초반 진행이 느린 편이고, 작품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을 법한 학교 생활이 은근히 비중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읽다보면 이 학교 생활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저 '일본판 죄와 벌 이야기' 라고 생각하고 읽었다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유리망치나 검은 집에 비해 주인공이 훨씬 어린 고등학생이고, 학교 생활도 은근히 많이 다뤄지고
있다. 작가가 꽤 나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작성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생활을 보면 라이트
노벨을 보는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있다는게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작품이 3인칭인것도 그런 부분이
아닌가 싶다. 사실 이 작품은 시점 이동이 전혀 없다. 1인칭으로 작성했어도 무방했을 것이고, 작가가 1인칭 작품을 이전에도
썼다는 것을 감안하면 굳이 3인칭으로 작성해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주인공에게 동화되어야 하는 이야기라면 1인칭이 더
유리하다. 그럼에도 3인칭으로 작성한 것은 아무래도 10대 후반의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기가 그만큼 난감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작품의 매력
이 작품의 매력이라면 첫째, 등장
인물들의 매력을 들 수 있다. 주인공의 어머니와 여동생, 여자 친구 모두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살인의 동기인 가족을 봤을때
'지켜주고 싶다' 라는 욕망이 강하게 들지 않으면 내용이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최고의
가족을 묘사해 놓았고, 그래서 마지막에 어머니가 경찰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부분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여자 친구
노리코에게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 자칫하면 '사족 이야기' 가 될 수 있는 학교 및 데이트 부분을 훌륭하게 채워냈다. 오히려
너무 무겁고 답답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취향까지 어느정도 만족 시킬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으로 기시 유스케씨는 1류
작가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인 러브 로맨스 부분까지 어느정도 성과를 보인 셈. (그러나 다른 작품들에서는....)
둘째로 디테일이다. 굉장히 치밀한 계획과 작전. 거기다 고등학생이 생각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이자 최적의 작전이라는 점이 더
돋보인다.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나가고 그것을 진행하는 부분에서 감탄을 느낄 수 있고, 주인공이 돌아다니는 과정이 굉장히
역동적이라 눈을 떼기 어려운 매력을 선사한다. 준비물(?)의 가격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등학생이 사용하기에 딱 적절한 수준이다.
물론 그 계획을 뒤집는 부분도 훌륭하다.
또한 집안의 특수성도 매력의 한 몫을 한다. 주인공은 창고 하나를 자기만의
별실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공간이 굉장한 매력이 있다. 마치 '톰 소여의 모험'에서 주인공들이 가출했을때 무인도에서 뛰어노는
장면을 보는 듯한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살인이라는 소재의 한계?
단점을 말하기 전에...약간 작품 외적인 이야기를 해보겠다.
이
소설은 '야마모토 슈고로 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의 후보로 올랐으나 수상하는데는 실패했다. 게다가 상당히 낮은
평가였다. 이전 글에서 극찬했던 '화차' 가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했었는데..개인적으로는 화차 못지않은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했기에 안타까움마저 느꼈다.
그러나 그 평가에서 짚어낸 부분들은 확실히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을만 하다.
우선 '머리가 좋은 사람이 쓴 리포트같다.' 는 평가. 확실히 디테일한 주인공의 계획은,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고문일 수밖에 없다. 소설 전개보다 분석에 페이지가 많이 소모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현실 불가능하면 일단
out 하는 지라 이런 점이 더 흥미로웠지만 아닌 사람도 많을 것이다.
'주인공에게 전혀 동정을 할 수 없었다.' 는
평가도 있다. ('이렇게 안타까운 살인자가 있을 것인가' 라는 캐치 프라이즈를 이용해 '이렇게 안타깝지 않은 살인자가 있는가.'
는 평도 있다.) 실은 나도 읽으면서 이 점이 약간 의문스러웠다. 주인공이 살의를 품는 '어머니의 전 남편' 이라는
사람이...아무리 봐도 그렇게까지 '쓰레기 같은 놈' 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그 후에 밝혀지는 이야기들을 보면 주인공이 너무
오버한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일부러 묘사를 절제해서 표현한건지는 모르지만. 같은 작가의 '검은 집'의 '그 놈'은
정말 살의가 마구마구 생길 정도로 재수 없는데 비해, 이 의붓 아버지는 그렇게까지 죽어 마땅한 상대가 아니다. 이건 나같은 놈이
썼다면 그 남자를 어마어마한 쓰레기로 만들어서 '죽어도 할 말 없는 놈'으로 만들었을텐데..조금 아쉽다. 오덕들이라면 '쓰르라미
울적에' 의 사토코 숙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사토코를 위해 숙부를 살해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 가 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몰입을 잃게 된다.
한편으로는 일부러 그런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살인이라는 범죄를 합당화해선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일부러 '살인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줄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 작품이 3인칭인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공감을 줄이기 위해서 시점을 주인공 내부가 아닌 외부로 다루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범죄 합당화인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인가...결국 소재 자체의 한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인 의견을 더 달자면. 살해 후 주인공이 방황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게 별로 공감이 안 되었다. 너무 갑자기 태도가 격변한 것도 그렇고. 그 방황이라는 부분이 상당히 애매해서..
그래도 훌륭한 작품
분명히 이 작품은 문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작품의 재미로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읽는다면 제대로 느끼지도 못할 만한 문제들이다.
적절한 분량과 적절한 머리싸움. 그리고 '만약 그랬더라면...'하는 부분 까지 포함하여 이 작품은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 = 단순한 바보 주인공'에 질렸다면 이 냉정하고도 뜨거운 주인공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 작품을 보고 기시 유스케씨의 모든 작품을 구입하기로 결심했으니까..
최근에 기시 유스케씨는 '악의 경전' 으로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다. (곧 한국에도 출판될듯) 결국 수상에는 실패했고..평가도 절망적이지만 미야베 미유키씨가 좋은 평가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데뷔후 10년이 넘어서 처음 후보에 올랐지만..그리고 미스테리/서스펜스 장르가 나오키상을 타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라면 가능하다!
앞으로 더욱 더 훌륭한 작품들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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