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자주 방문하는 만화 관련 블로그가 있다. 그 운영자는 만화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구입한 만화책도 수백권(혹은 수천권)은 되는것 같다. 게다가, 특정 장르만 고집하는 경향도 없고 리뷰도 객관적인 편이라서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

이 만화의 작가 모모치 레이코씨라는 사람도 그분의 글로부터 처음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그건 안 좋은(그분에게는 드물게도) 글이었다. '모모치 레이코, 스에노부 케이코의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만화가 일본에서 인기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일본인의 취향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라는 글이었다.

하지만, 난 반대로 흥미가 생겼다. 나는 당시 스에노부 케이코씨의 '라이프'(이지메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만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모모치 레이코씨의 작품에 대해 찾아보니 한국에 발매된 책이라고는 이 우리들의 작은 비밀 시리즈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절판이 되어 구할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른 후. 대원에서 다른 작품을 정식 발매하게 된다. '문제제기 시리즈'라는 4종류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만화들이다.(원래 따로따로 나온 만화를 대원에서 시리즈라고 묶어서 내놓은듯 하다.) 그 작품중 하나를 읽어보니. 이건 대단한 만화다! 라는 생각이 들어 전 시리즈를 구매하였다. 하지만, 정작 우리들의 작은 비밀...은 구하지 못했다가. 최근에서야 중고 만화 시장을 뒤져서 구입할 수 있었다.(의외로 물량이 꽤 있었다.)



모모치 레이코.

이 작가는 잔인하고 무서운 (그러면서 학원물) 만화만 그리기로 유명하다. 순정 만화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고 적나라한 내용들이 많다.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 일탈, 학교 폭력, 원조교제(청소년 성매매), 성추행 등등. 순정 만화에선 금기시 되고 있는 내용들로만 만화를 그려 낸다. 그래서, 한국에 나온 만화중에서도 상당수가 19세 미만 불가이다.

거기다 그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그림체. 그림만 봐선 평범한 순정 만화 작가이다. 신조 마유씨같은 차가우면서 날카롭게 생긴 주인공들도 아니고, 평범하게 생긴 순정 만화 주인공 A,B들을 데리고, 그런 만화들을 그려내니 더욱 충격적이다. (이런 점들이 스에노부 케이코씨와 비슷하다.)

이런 점에 적응을 못 하고 이 작가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해를 못 하는건 아니지만. 난 이런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순정 만화고 소년 만화고 안 가리고 보지만. 솔직히 최근의 학원 순정 만화는 지겨운게 사실이다. 맨날 똑같은 '평범한 주인공'(이라고 주장하는) 소녀 A와, 자상한 남자 B. 싸가지 없고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툰 남자 C. 이 셋이서 티격대격 다투고, 인생에 고민이라고는 전혀 없고, 오직 사랑 빼고는 남는게 없는 life. 이런 만화는 이제 식상하지 않는가?

그에비해 차라리 모모치 레이코씨의 만화는 현실적이다. 세상에 즐거운 일만 있는 인생이 어디있는가? 만화속으로 현실 도피도 즐겁지만. 가끔은 냉정한 현실도 제 3의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는게 아닐까?

예를들어 빅 셀러 '꽃보다 남자' 를 보자. 초반을 보면, 여 주인공이 F4와 대립하게 된다. 전교생의 이지메라는 최악의 상황에 여 주인공은 맞서는데. 반 권도 가지않아 내용은 평화로워진다.

여기서 상황이 해결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여 주인공이 F4의 리더에게 한방 날리자, 갑자기 남자 놈이 '날 때린 여자는 니가 처음이야!' 하더니 맹렬하게 관심을 갖게 되지 않는가? 그러더니, 학교 최악의 악동이라는 애들이 무지하게 착해진다? 더이상 다른애들도 안 괴롭혀?

이봐. 잘 봐. 이런 말도 안 되는 전개가 어딨어? 실제라면 어땠을까? 전교생의 표적이 되어 매우 힘들고도 고달픈 싸움을 해나가겠지? 그게 현실이다.

또, 대히트작 아이들의 장난감을 보자. 처음에 만화를 보면 남자 꼬마 놈을 주축으로 한 초딩놈들이 싸가지 없는 짓만 골라서 한다. 한국 초딩들의 현 실태를 보는것 같다? (왜 안 좋은 문화는 죄다 배껴오지? 남은건 등교 거부인가?)
이에 여 주인공이 격분하여 남자 놈을 사진 한 장으로 협박하여 학교를 평화로 이끈다. 그리고 둘은 티격대면서 사랑을 키워나가??

잘 봐. 이런 말도 안 되는 전개가 어딨어? 실제라면 어땠을까? 여 주인공이 거꾸로 폭력(혹은 성폭력)으로 협박을 당해서 더욱 더 상황 악화. 더럽지만 이게 현실이다.

바로 이런 내용을 그린 만화가가 모모치 레이코씨. 스에노부 케이코씨 인 것이다.

나는 그다지 즐거운 학생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물론 얻은것도 있었지만 잃은게 더 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더욱 이 만화들이 공감이 간다. 무슨 학교를 연애 성지에, 적당히 놀러 다니는 곳으로 묘사하는 만화들은 솔직히 엄청나게 공감이 안 가거든. 그런 의미에서 이 작가의 만화를 지지하고. 정식 발매좀 많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작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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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 신 우리들~ 1권. 세주문화의 부도를 한탄하며..


이게 원래 시리즈물인지, 일본에선 따로 따로 나온 책인데 한국에서만 묶어 낸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 만화는 옴니버스이다. 한 권에 몇 편이나 되는 이야기들이 들어 있고, 4권까지 계속된다. 물론 내용들은 서로 전혀 이어지지 않고, 캐릭터도 각각 다르다. 테마만 같을 뿐이다.

지극히 순정 만화다운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일탈, 약물, 성매매 등 과격함 투성이다. 해피 엔딩이 아닌 만화도 수두룩하다. 내용 반전도 많아, 마지막 1P까지 방심할수가 없다.

물론 잔인하고 선정적이고 폭력적일뿐인 만화는 재미 없을 것이다. 아니. 재미는 없고 폭력만 있다면 그건 쓰레기지. 하지만, 이 만화들은 다르다. 아프면서도 공감이 있다.
이 만화에선 '선'이 무조건 이기지도 않는다. '악'이 무조건 이기는것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드 엔딩이, 그리고 해피 엔딩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마구 몰려가던 주인공이 아주 엄청난 행운으로 승리하는 일도 없고, 비현실적으로 주인공만 불행해지는 전개도 없다. 담담하게 현실을 토로하였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돼!' 하고 울컥할 일은 없었다.

우리는 행복하고 달콤한 것만 바라보려 하고, 아픈것. 쓴 것은 싫어한다. 왕따당하는 학생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은 하면서 '내가 안 당하니 다행.', '그래도 남의 일' 이라는 생각을 하며 못 본 척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을 보다 더 행복하고 멋진 곳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아파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환각제. 그렇다. 분명 잘못된 것이고, 약물이나 복용하는 사람은 위험한 놈이다. 하지만, 왜 그들이 약물을 복용하게 되었는가? 물론 아무 생각없이 다른 노는 애들이 하니까. 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량하고 더러운 양아치들만 그런 일탈을 하는 것일까? 나와 내 주변의 '평범한 친구들'은 전혀 인연조차 없는 세계인가?
에이즈. 걸린 사람이 잘못한 거다? 동성애자나 걸리는 불결한 병? 과연 그럴까? 나와는 아무런 관련없는 단어인가?

우리가 모르는. 하지만, '남의 일' 이라고만 단정할 수 없는 수 많은 일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들에 대해서..생각해 보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그러기에 난 이 만화를 추천한다. 그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만화이다.



순정 만화의 한계?

이런 아픈 이야기들이지만, 대부분 끝은 해피 엔딩이다.
물론 해피 엔딩이라고 하더라도, 아픔을 잔뜩 겪고, 피해도 큰 상처투성이의 반쪽짜리 해피 엔딩이긴 하나.
많은 이야기들이 거의 다 주인공이 이기는 것으로 끝나니, 작품 후반부쯤 되면 긴장감도 떨어지고, 현실성도 떨어지게 된다.
이것은 지독한 결말을 두고 보지 못하는 순정 만화 독자들을 위한 설정이 아닌가 싶긴 한데. (만화라는 매체가 대부분 그렇지만)
어쩔수 없다고는 해도 조금 아쉽긴 하다.



문제제기 시리즈?

이 작가의 작품들중 이 시리즈 외에 한국에 유일하게 발매된 작품인 문제제기 시리즈.

이 작품은 우리들의 작은 비밀들과는 다르게 조금 내용이 길다. 최소 반 권. 최대 3권 분량. 주제는 비슷하나, '사건' 하나 하나보다 '전체적인 스토리' 의 비중이 강하다.
역시나 강도 높은 내용에. 특히, 4편인 '신에게 버림받은 20일' 은 거의 남성 성인 만화 수준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스토리는 그대로, 그림만 더 강도를 높인다면 충분히 발매될 수 있을정도로)
이게 일본에선 시리즈가 아닌걸 한국에서 억지로 시리즈로 엮은듯한 냄새도 나는데. 만약 그렇다면, 5편이 발매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물론 희망사항일 뿐이다.



마치며

우리들의 작은 비밀은 4권 완결에, 신 우리들의 작은 비밀이 1권이라고 나와 있는것으로 보아 2,3권들도 출판될 예정이었다고 생각되나. 나오질 않았다. 이유는 출판사인 세주 문화사가 도산하였기 때문이다.
작은 출판사이니만큼 유명 타이틀은 계약을 얻기 힘들고..따라서, 잘 알려지지 않은 진주들을 골라내 출판하던(물론 '당췌 이런 만화를 왜 계약한것이지?' 싶은 만화도 존재한다.) 회사였기때문에 매우 안타깝다. 사실, 문제제기 시리즈가 정식 발매된것도 놀라운 일이며. 앞으로 이 작가의 만화가 정식으로 나오는 일이 있을지나 모르겠다. (이미 문제제기 4편 '신에게 버림받은..' 발매 후에 신작이 나온 상태다.) 워낙 비주류인 내용에, 19금이라는 벽마저 있으니.

스에노부 케이코씨의 라이프는 국내에서 어느정도 매니아층을 형성하는데 성공했지만, 모모치 레이코씨는 거의 안 알려지다시피 한 작가이다. 라이프의 드라마적인 내용과는 달리, 일탈이 너무 강해서..등의 스토리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대여점 물량 시장인 우리나라 특성상 일단 단행본이 많아야 어필할 수 있기 때문에..라는 이유도 클 것이다. (라이프가 세주에서 6권까지 나왔을땐 아무도 그 만화를 몰랐다.) 모모치 레이코씨는 장편이 없으니..그래서, 더욱 발매의 가능성이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정식 발매가 되길 바랄뿐이다.




2009/07/28 추가

위키페디아를 찾아보니, '우리들의 작은 비밀'도 원래 일본에선 문제제기 시리즈로 나온 이야기들인것 같다.
세주에서 출판도중 사업 포기로 한국 발매가 중단된 것을 대원에서 새로 (세주에서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로 골라서) 출판한 것이고. 더불어 '신에게 버림받은 20일'은 문제제기 시리즈가 아닌데 대원에서 그냥 겸사겸사 해서 넣어 발매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작가의 작품중 '마음'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역시 문제제기 시리즈로, 4권의 장편(이 작가로서는 대장편)이나 한국에는 발매되지 않은 상태. (즉, 5편으로 발행될 가능성도 있으나..대원이 그럴만한 회사도 아니고)



다음 작품 : 게임 - 피구왕 통키(for mega dr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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