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아픈데는 없겠지? 몸에 이상은 없느냐는 말이다."
이 남자,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서 뻔뻔하게 그런 소리를 했다.
나는 조금 기분이 언짢았다.
만약 나를 구하러 온 사람이라면, 아니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눈 가리개정도는 제거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나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범인이라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물어볼때 순순히 대답하는 것이 나를 위해 좋은 일이었다.
나는 몸 상태가 괜찮은지 몸에 감각을 집중했다.
묶여있어서 답답하긴 했지만 아프거나 한 건 아니었다. 컨디션은 좋은 편이었다.
"괜찮은것 같아요."
그때 나는 그의 뻔뻔한 태도로부터 분노를 느꼈다거나 하지 않았다.
무서웠다. 만약 눈만 보였다고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눈이 보이질 않는다는건 별의 별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지금 그가 칼을 들고 내 눈 앞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무섭지 않을수가 없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이 남자에게 두려워하는 태도를 보이면 정말로 위험하게 될것 같았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와 대화하며 한편으로는 내게 놓인 현실을 파악하려 했다.
우선 지금까지 알게 된것 처럼 팔과 몸이 묶여있고 눈이 가려져 있다.
기둥같은 것에 단단하게 묶어놨는지 조금 힘을 줘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과 코는 자유로웠다. 적어도 숨을 쉬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 번 코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오래된 나무 냄새 같은것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다리는 일자로 모인채로 앞으로 주욱 뻗은 상태였다.
다리를 움직여 보였다.
좌우로 움직여지긴 했으나 왼쪽과 오른쪽 다리가 같이 움직였다.
다리를 서로 묶어놓았지만 따로 어딘가에 고정시키지는 않은 모양이다.
부위별로는 잘 알았으니, 다음으론 온 몸에 감각을 집중시켰다.
확실하진 않지만 교복을 입은 채 인것 같았다.
치마를 입고 있는 것을 느꼈는데, 나는 교복 이외에는 치마를 입지 않으니까.
이 남자가 남의 옷을 갈아 입히는 것을 좋아하고, 여성의 치마까지 따로 갖고 있는 특별한 취향의 사람이 아닌 이상 내 옷임에 분명했다.
신발도 신고 있었다.
학교 다닐때에 신는 구두 같았다.
머리에는 아무 것도 쓰고 있지 않았다. 원래 나는 머리에 무언가를 쓰고 다니지 않는다.
일단 신체적인 파악은 이정도로 됐다.
이제 생각해보자. 나는 왜 이런 곳에 이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일까?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 보면 이제 막 중학교 3학년이 된 평범한 여자애라고 생각한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해 체육이라는 과목을 싫어하는것 외엔 이렇다할 내세울 특징이 없어, 자기 소개하는 시간이 제일 곤란할 정도다.
당연히 누구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도 없었고, 누군가를 굉장히 증오한다거나 한 적도 없었다.
못생겼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특별히 예쁜것도 아니다.
물론, 스토커 같은 것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한가지 짐작되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이렇게 될만한데에는.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 이유밖에는 생각되는 것이 없다.
돈이다.
돈을 노린 자에게 유괴된 것이다.
유괴? 납치? 어떤게 맞는 표현 일까?
언제 이 자에게 붙잡혔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있다가 납치된 건지, 집으로 오던 도중에 유괴당한 건지. 잘 기억 나질 않았다.
어쨌든 학교를 나선 기억은 있는데, 집에 도착한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서 도중에 유괴당한 것 같았다.
범인의 얼굴은…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기억에는 없었다.
아마도 범인은 계획적으로 나를 납치했을 것이다.
등 뒤에서 나를 기습했기 때문에, 내가 이 남자를 보질 못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계획적으로 납치했다는 것은 무언가 원하는게 있다는 말이다.
역시 돈을 노린 범행인 것이 분명하다.
나는 정확한 동기가 알고 싶어졌다.